큰 병에 걸린 두 사람이 같은 병실에 입원했습니다. 그 병실에는 창문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창가 쪽에 있던 환자는 치료의 과정으로 오후에 한시간씩 침대 위에 앉아 있도록 허락받았지만, 벽 쪽에 있던 다른 환자는 온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매일 오후, 창가 쪽 환자는 벽 쪽 환자에게 바깥 풍경을 설명해주곤 했습니다. 

"호수가 있는 공원이 보이네요. 호수에는 오리와 백조가 떠다니고 있어요. 아이들이 오리와 백조에게 모이를 던져 주고 있고 모형 배도 띄우며 놀고 있어요."


누워 있는 환자는 즐겁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왜 창가에 있는 저 사람만 특권을 누리고 있는 거지? 침대 위치를 바꿀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괴로워졌습니다.


그렇게 시기와 질투로 괴로워하던 어느 날, 창가 쪽 환자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됐습니다. 벽 쪽 환자는 비상벨을 눌러야 했지만 모른 체했습니다. 자신이 창가 쪽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창가 쪽 환자는 시신이 되어 병실을 나갔습니다. 벽 쪽 환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침대를 창가로 옮기고 안간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는 이내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맞은편 건물의 회색 담벼락뿐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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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디모앙
대충 사용하다 고장나면 뭐가 문제인지 모르죠 정확하게 사용하면 뭐가 문제인지 금방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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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 계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보면,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계셔야 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에서 생명체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그 생명체들이 어머니 없이 오직 아버지를 통해 생명을 얻습니까? 아닙니다. 생명이 탄생하려7면, 아버지뿐만 아니라 반드시 어머니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하늘을 나는 새에게도 아빠 새와 엄마 새가 있고, 물속의 물고기에게도 아빠 물고기와 엄마 물고기가 있습니다. 들판을 뛰어다니는 짐승들은 어떻습니까?> 사자에게도 아빠 사자와 엄마 사자가 있고, 말에게도 아빠 말과 엄마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체들을 보면, 어머니 없이 아버지 홀로 생명을 주는 경우가 없습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생명을 물려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어머니 없이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물론 아버지도 있어야 하지만, 최종적으로 자녀를 잉태해서 탄생시키는 일은 어머니가 합니다. 생명 탄생의 핵심 역할을 어머니가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없는 세계는 가히 생명이 없는 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모든 생명이 아버지와 더불어 반드시 어머니가 있어야 주어지도록 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만물을 당신의 뜻대로 지으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계4:11)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어머니가 있어야 생명이 탄생되도록 만드신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원한 생명 역시 아버지 하나님과 더불어 어머니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사실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모든 생명체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생명을 얻듯이, 우리 영혼도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으로부터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체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볼 때에, 우리에게는 영생을 주실 어머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계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도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을까요? 확인해 봅시다.


창세기 1장 2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뿐이라면, 당연히 "나의 형상을 따라 나의 모양대로 내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셨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단지 아버지 하나님만 계신 것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그 이유를 알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리고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누가 창조되었습니까? 남자와 여자가 창조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남성적 형상과 여성적 형상으로 존재하신다는 뜻입니다. 인류는 하나님을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으로만 이해하고 오랫동안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은 누구라고 불러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어머니'입니다. 다시 말해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가리켜 '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요일2:25).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알리시고자 모든 생명체가 아버지와 더불어 반드시 어머니가 있어야 생명을 얻게 되도록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함께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에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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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디모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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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왕'이라 불리는 세계적인 사업가 록펠러는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가 앞으로 1년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록펠러가 병원에 앉아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어떻게 해야 잘 마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병원 한구석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돈을 마련할 테니 입원시켜 달라는 보호자와 

규정상 입원비 없이는 입원시킬 수 없다는 병원 측 관계자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환자로 보이는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앉아 있었습니다. 

록펠러는 즉시 비서를 불러 그 아이의 입원비를 대신 지불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록펠러는 병원에서 건강하게 회복된 아이의 모습을 보며 

전에 느끼지 못했던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후 록펠러는 가는 곳마다 고아원과 도서관을 세웠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돕는 자선사업을 하며 

나눔과 베풂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놀랍게도 그의 건강은 기적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결국 선고받았던 1년을 훌쩍 넘겨 43년을 더 산 그는 

98세로 삶을 마감하는 순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이 이렇게 행복한 것인 줄 몰랐습니다. 

55년은 쫓기듯 살았지만, 나머지 43년은 정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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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가르쳐주셨기 때문입니다(마6:9).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알려주신 것이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 계신다는 뜻일까요?


문자적으로 아버지란 자녀를 가진 남자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어떤 남자가 '아버지'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그에게 반드시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자녀가 없다면 결코 '아버지'라고 불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버지'라고 불리신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에게 자녀가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7절~18절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전능하신 주 곧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사람이 된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자녀 즉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홀로 자녀를 낳을 수 있습니까? 지상의 모든 가족을 생각해 보십시오. 자녀가 있다면 반드시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도 있습니다. 어머니의 존재가 없다면, 자녀도 있을 수 없고 자녀를 가진 아버지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아버지'라는 호칭은 반드시 어머니가 있을 때에만 생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결국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어머니 하나님께서 계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늘에 우리 어머니께서 계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26절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여기서 '위'는 하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늘에 누가 계신다고 하였습니까? 우리 어머니께서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늘에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계심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육신의 가족에 아버지와 아들 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도 있는 것처럼, 영의 가족에도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성경의 가르침대로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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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디모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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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교회에서 새언약 유월절을 전하다 보면 많이 받는 질문들이 "우리들도 성찬식을 행하는데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을 전하면서 왜 하나님의교회만 유월절을 지킨다고 하느냐"고 말합니다. 오늘은 이것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날 성찬식을 행하는 교회들의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천주교에서 지키는 성찬식 : 매주 미사 때마다 지킴

2. 개신교에서 지키는 성찬식 : 한달 또는 석 달 또는 1년에 1(그 외) 지킴


현재 천주교나 개신교에서 성찬식을 행하는 날이나 방법이 제 각입니다. 왜 그럴까요? 힌트를 드리자면 성찬식에 있습니다무슨 말씀이냐면요오늘날 세상 교회들이 지키는 소위 성찬식은 초대교회의 진리가 변질된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교회들이 믿고 있는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진리는 성찬식이 아니라 새 언약 유월절입니다.


누가복음 227~15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희생되기 전날 밤 즉 로마 군병들에게 붙잡힌 날은 유월절날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명절(절기) 가운데 첫번째 절기로서 구약시대 애굽나라의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통해서 해방시켜 주신 역사에서 절기로 제정해 주신 날입니다.

 

출애굽기 122~14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찌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절기로 삼아 해마다 지키게 된 것입니다.

 

레위기 234~5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성경말씀을 보시면 유월절은 분명히 지키는 날짜와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유월절을 기다렸다가 때가 이르매지키셨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약의 율법은 폐지되었기 때문에 양을 잡아 먹는 유월절은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가 버렸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제자들과 양을 잡아 먹었나요? 아닙니다. 양을 잡아 먹으며 지키던 구약의 유월절을 유월절 양의 실체이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표상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새 언약의 유월절로 바꿔 주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219~20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날에 양을 잡아 먹은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셨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유월절 떡은 예수님의 살 대신에 주신 것이요, 유월절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표상하는 것입니다. 구약 율법의 유월절 제물이었던 양 대신에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유월절 제물의 실체로서 예수님께서 희생이 되셨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57~8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없는 떡으로 하자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의 실체로서 희생이 되셨기 때문에 유월절을 지키야 한다고 사도바울이 제자들에게 전하는 장면입니다. 구약 율법이 폐지되었으므로 유월절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성경은 오히려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의교회는 성력 정월 십사일 저녁에 새 언약의 유월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새 언약의 유월절을 지키기 전에 반드시 행해야 할 예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세족예식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살펴 봅시다.



요한복음 131~15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베드로조차 세족식을 행하지 않는다면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고 하셨으니 세족식을 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행하게 하기 위해 본을 보이셨다 하셨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의교회는 유월절을 지키기 전에 세족예식을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이러한 성경 가르침대로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가 어디에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교회에서만 성경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대로 유월절을 지키는게 중요한 것인지 알아 봅시다.

 

요한복음 653~5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고 다른 떡과 구별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살과 피로 약속하신 떡과 다른 떡을 구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로 약속하신 떡이 바로 유월절 떡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617~28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저희가 먹을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먹는 떡을 축복하시고 예수님의 몸()이라 하셨고 유월절에 마시는 포도주를 축복하시고 예수님의 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유월절에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여기서 그의 피는 유월절에 희생하신 예수님의 피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의 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월절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의 희생의 피는 유월절 희생의 피였습니다.

 

출애굽기 3425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유월절 희생을 아침까지 두지 말찌며

 

 

 

이러한 가르침을 떠나서 아무 날에 떡과 포도주를 마시며 이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주장한다면 그게 효력이 있을까요? 예수님 말씀처럼 먹고도 죽은 떡밖에 다른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실제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을 때 예수님께서 축사하신 떡을 오천명이 먹기도 하였지만 거기에는 예수님의 살이라는 약속이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살이라는 약속이 담긴 떡은 오직 유월절 떡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떡과 포도주를 먹는 자체가 영생을 약속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약속이 담긴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 영생을 약속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이 떡과 포도주를 먹기를 원하셨다고 하지 않으시고 유월절 먹기를 원하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2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예수님의 말씀을 볼 때 단순히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유월절을 지켜서 먹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만약 아무 때나 먹어도 되는 것이라면 왜 굳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셨다고 하셨겠습니까?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자신들도 성찬식을 행한다고 하지만 거기에는 그 어떤 축복도 담겨있지 않습니다. 아무 축복도 없는 성찬식을 행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회는 왜 유월절을 지킨다고 하지 않고 성찬식을 행한다고 할까요?

교회의 역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성력 114일 저녁, 목요일)에 성만찬을 하시고 다음 날인 무교절(성력 115,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무교절 다음에 오는 안식후 첫날(일요일)에 부활하셨습니다. 즉 부활절은 무교절 후 첫 일요일로서,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시기 전에 지키셨던 유월절과는 완전히 다른 날입니다(22:15) 따라서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유언에 따라 성력 114일 저녁에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유월절 성만찬을 행하였고(고전5:7, 11:23~26), 다음날인 15일에는 무교절을 지켜 금식하였으며(2:19~20), 무교절 후 첫 일요일에는 떡을 떼며 부활절을 지켰습니다(20:6~7, 24:30~31).

사도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세계의 수도 로마에 위치한 로마교회의 주장이 점차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초기에 노예 등 하층민 신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로마교회에 점차 중류층이 입교하고 나중에는 귀족들까지 입교하게 되자 인근 교회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로마교회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떠나 곁길로 나가기 시작하여 유월절에 성찬식 하는 것을 거부하고 유월절 다음의 일요일(부활절)에 성찬식을 하였습니다. 성찬식은 원래 그리스도의 부활이 아니라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고전11:26).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교회는 서로 다른 절기인 유월절과 부활절을 한 절기로 합쳐서 부활하신 일요일에 성찬식을 거행하는 풍습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1차 유월절 논쟁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 교회의 새로운 전통은 예수님 때로부터 성력 114일 저녁에 성찬식을 행해오던 동방 교회들과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55년경에는 로마교회 지도자인 아니케터스와 서머나 교회 감독이던 폴리캅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폴리캅은 이 논쟁에서, 자신이 여러 사도들과 함께 매년 유월절 곧 성력 114일을 지켜왔다고 하며, 유월절에 성찬식을 하는 것이 예수님 때로부터 내려온 전승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양편은 서로를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사(초대편) J.W.C 완드 저. 이장식 역, 대한기독교서회. 2000. 121~122]

그러나 동서방 교회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아시아에서 본 가장 중요한 날짜는 닛산(Nisan) 14일이었는데그리고 감사의 성찬식을 거행하던 습관을 가졌었다. 그러나 서방 교회에서는 닛산 14일 다음의 일요일까지 금식을 계속하고 그리고 유월절 성찬식을 거행하였는데,…155년에 폴리캅은 로마 교황 아니케터스와 이 문제를 토론하였으나 양편이 다 설복시킬 수가 없어서 서로 다르게 그 날을 지키기로 합의를 보았다.

 

2차 유월절 논쟁

이후 197년경, 유월절 논쟁은 다시 촉발되었습니다. 당시 로마교회의 감독(오늘날의 교황)이었던 빅터는 유월절(성력 114일 저녁)이 아니라 유월절 다음의 첫 일요일(부활절)에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 도미닉의 규칙(주의 규칙)’이라고 주장하며 여러 교회에 강요하여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께서 닛산 14일에 성찬식을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빅터는 그 후에 오는 일요일에 성찬식을 행하는 로마의 관습이 예수님의 규칙이라고 우겼던 것입니다.

[교회사(초대편) J.W.C완드 저. 이장식 역. 대한기독교서회. 2000. 122]

이 논쟁의 보다 더 중요한 단계는 197년 로마에서 일어났다. 아니케터스보다 훨씬 더 유력하던 로마 교황 빅터는 모든 혼란을 중지시키고 부활절을 일요일에 지키는 도미닉의 규칙을 채용하도록 전 교회에 강요하였다. 동서방 각지에서 여러 가지 회의가 열렸는데, 그 결과는 아시아를 제외하고는 각지에서 도미닉의 규칙을 채용하게 되었다. 빅터는 거기에다 자기의 특권을 행사하여 완고하게 거절하는 교회를 책벌하였다. 그런데 이 처사는 항의의 폭풍을 일으켰다.

이에 서방 교회들은 로마교회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으나 사도시대로부터 유월절성만찬을 성력 114일에 기념해 온 아시아 교회들은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에베소 감독 폴리크라테스는 빅터에게 편지를 보내 아시아 교회들을 지도했던 사도 빌립, 사도 요한, 그리고 여러 순교자들이 114일에 유월절을 지켰음을 말하고, 8대 감독인 자신도 전승을 따라 114일에 유월절을 지키고 있다며, 유월절을 지켜야 함을 강한 논조로 설명하였습니다. 이에 빅터는 아시아 교회들을 비정통으로 몰아 파문하려 하였지만, 여러 교회 지도자들의 만류로 파문 조치를 취소해야만 했습니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유세비유스 팜필루스 저. 엄성옥 역. 은성. 1990. 294~295]

그러나 아시아의 감독들은 교부들로부터 자신에게 전해내려온 관습을 지키기를 고집했는데 그들을 이끈 사람은 폴리크라테스였다. 그는 빅톨과 로마 교회에 보낸 서신 속에서 자신들에게 전수되어진 전승을 설명하였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진정 올바르게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아무 것도 덧붙이거나 감하지 않았습니다열두 사도의 한 사람인 빌립과ㅋ또한 우리 주님의 가슴에 기대었으며요한도 에베소에 묻혀 있습니다이 사람들은 모두 조금도 빗나가지 않고 신앙의 규칙을 따르면서 복음에 따라 14일을 유월절로 지켰습니다. 그리고 나 폴리크라테스는 비록 당신들 중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 불과하지만 내 전임 감독들의 전승을 따르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일곱 명의 전임 감독들이 있고 나는 8대 감독입니다. 전임 감독들은 항상 백성들이 누룩을 없앤 날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65세가 되었고 전세계의 형제들과 협의하였으며 모든 성서를 연구해온 나는 나를 협박하기 위해 취해지는 모든 일에 전혀 놀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보다 훨씬 위대한 사람들은 우리는 사람에게 순종하기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이 서신을 받은 로마교회의 감독 빅톨은 즉시 아시아의 모든 교회와 그 인근의 교회들을 비정통으로 몰아 보편단일체에서 제거하려고 했다. 그는 널리 서신을 발송하여 그곳의 모든 형제들이 완전히 파문되었다고 선포했다. 그러나 이것은 감독들의 일치된 견해는 아니었다.

 

니케아 회의에서 유월절 폐지

아니케터스, 빅터 등 로마 교황들이 계속해서 유월절을 없애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쟁의 불씨는 4세기에 다시 점화되었고, 사단은 결국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주재한 니케아 회의를 통해 생명의 진리를 없애버렸습니다. 325년에 니케아 지방에서 열린 이 종교회의에서 오랫동안 유월절을 없애기를 원했던 로마교회의 주장대로 유월절을 폐지하고 성찬식을 부활절에 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절 날짜는 춘분  만월 다음의 첫 일요일로 정했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이라는 성경적 기준을 없애고 부활절 날짜를 계산하려고 하다 니, 성경에 없는 춘분 후 만월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그 다음에 오는 일요일을 부활절로 정한 것입니다.

 

이후 로마교회의 권력에 복종하지 않고 114일에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들은 이단으로 간주되어 박해를 당했습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은 사막이나 산중, 동굴에 숨어서 유월절을 지켜야 했습니다(교회사 초대편 283쪽 참조).

이렇게 새 언약 유월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성찬식을 한다고는 하지만 알맹이는 쏙 빼버리고 껍데기만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떡과 포도주를 아무리 먹어도 그 안에 그리스도의 약속이 담겨 있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낱 썩을 양식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 인류인생들을 위해 세워주신 새 언약 유월절이 없어져 버렸으므로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2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히브리서 927~28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마지막 때의 상황은 믿음을 찾아 볼 수 없는 상태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많고, 믿는다 하는 사람이 많을지라도 구원받기에 합당한 믿음을 찾아 볼 수 없기에 재림하시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모든 예언에 따라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두 번째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가 바로 안상홍님이십니다.

안상홍님께서는 새 언약 유월절을 비롯하여 잃어버린 모든 진리들을 회복해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이 증거하는 그리스도시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성경은 이미 예언을 통해 알려주셨습니다.

 

이사야 256~9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장차 하나님께서 오래 저장했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풀어 주신다는 성경의 예언입니다. 그런데 그 포도주가 어떤 축복이 있었습니까?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영생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 가운데서 영생의 축복이 담겨있는 포도주는 어떤 포도주입니까? 오직 유월절의 포도주입니다.

그렇다면 그 날즉 오래 저장했던 포도주로 영생의 축복을 주신 그 분이 누구라고 하셨습니까?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하나님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즉 유월절로 영생의 축복을 주시는 분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이라고 하셨습니다(5:39)

이러한 예언의 말씀을 볼 때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폐지된 이후 오랫동안 지켜지지 못했던 새 언약 유월절을 다시 회복해 주신 안상홍님은 누구라는 말씀입니까?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우리를 구원하시고 저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는 재림예수님이시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성경대로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아울러 초대교회의 순수한 신앙을 그대로 지키는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시고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을 넘치도록 받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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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교회는 안식일과 유월절 같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의교회는 다른 구약의 율법들도 전부 지키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교회도 구원받을 수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1. 저들은 율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율법에는 두 가지 율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구약시대에 주신 모세의 율법이고 다른 하나는 신약시대에 주신 그리스도의 율법입니다.


히브리서 8장 7절~13절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


여기서 첫 언약은 모세의 율법이고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율법입니다. 첫 언약이 흠이 있다는 말씀은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는 우리가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새 언약 즉, 완전한 율법인 그리스도의 율법을 세워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이 말씀에 따라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율법인 그리스도의 율법을 세워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율법을 지키되 구약의 모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완전케 된 그리스도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2. 사도들 역시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스도의 율법을 지켰습니다.


사도행전 17장 2절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고린도전서 5장 7절~8절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이라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사도들이 지켰던 안식일, 유월절은 짐승의 피를 흘려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구약의 율법 즉,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의 본을 따라 예배로써 지키는 그리스도의 율법이었습니다(눅4:16, 눅22:15~20).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라고 증거하기도 하였습니다(고전9:21). 따라서 우리는 사도들이 지켰던 것처럼 안식일, 유월절과 같은 그리스도의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흠이 있는 모세의 율법을 완전한 그리스도의 율법으로 바꿔 주셨습니다(히7:11~12). 완전한 그리스도의 율법은 지켜야 하지만 모세의 율법은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지키고 전하는 안식일과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세워주시고 사도들이 지켰던 그리스도의 율법입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그리스도의 율법을 지켜 구원받는 사람들이 됩시다(계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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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경영인'으로 불리는 GE(제너럴일렉트릭사)의 전 회장 잭 웰치는 어린 시절 심한 말더듬이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심하게 말을 더듬었는지 식당에서 참치 샌드위치 한 개를 주문하면, 종업원은 그에게 샌드위치 두 개를 가져왔습니다. 영어로 참치를 뜻하는 튜나(tuna)를 주문할 때 '튜...튜나'라고 더듬어, 종업원이 '투 튜나(two tuna)'로 알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로 잭 웰치가 실망하고 낙담할 때면 그의 어머니는 "넌 왜 그렇게 말을 더듬니? 똑바로 하지 못하겠어?"라고 윽박지르기보다 오히려 칭찬과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네가 말을 더듬는 이유는 생각의 속도가 너무 빨라 입이 그 속도를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조금도 걱정할 것 없어. 너는 자라서 큰 인물이 될 거야."


어머니의 지혜로운 칭찬에 자신감을 얻게 된 잭 웰치는 매사에 부단히 노력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이 성공한 기업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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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란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돕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죄로 인해 멀어져버린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돕는 일이나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하고 있습니다.

범죄한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백성의 마음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려 했던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나, 범죄한 백성을 불쌍히 여겨서 그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했던 모세와 같은 선지자도 중보에 해당합니다.


출애굽기 32장 30절~31절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이처럼 선지자들도 일부 중보의 역할을 했지만, 성경에 나타난 중보의 전형적인 예는 바로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의 직무 자체가 속죄 제물을 희생시켜, 범죄한 백성이 하나님께 용서를 받게 하는 중보사역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지상 성소의 제사장들이 짐승의 피를 통해 백성의 죄를 용서받게 하는 중보였는데, 이는 장래 일의 그림자입니다. 신약시대에 하늘 성소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속죄 제물의 실체이신 당신의 피를 통해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는 중보가 되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신약시대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죽을 수밖에 없는 구약시대의 제사장들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항상 살아계셔서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지금까지 죄인인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히7:25, 롬8:34). 또한 마치 법정의 변호사와 같아서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주십니다(요일2:1).

그뿐 아니라, 하늘의 죄인들을 위한 유일한 중보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늘에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멀어졌던 관계를 다시 회복하시기 위해 당신의 피를 통해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새 언약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멀어지게 된 원인 곧 죄를 없애신 것입니다(마26:28, 눅22:20).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새 언약의 중보라고 증거합니다.


히브리서 9장 15절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새 언약의 중보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새 언약을 통해서 중보사역을 하는 제사장이시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새 언약의 절기를 지켜야 하늘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중보사역에 힘입어 죄 사함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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